바이빙빙 딸 바이샤오옌 유괴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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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바이빙빙 딸 바이샤오옌 유괴 사건

by 반얀트리 2022. 8. 12.

안녕하세요 오늘은 바이빙빙 딸 바이샤오옌 유괴 사건에 대한 글을 적어보겠습니다.
바이샤오옌 유괴 사건 내용과 범인의 최후등 본문에 설명해 넣었으니 끝까지

읽어보시면 바이샤오옌 유괴 사건에 대해 자세히 알아가실 수 있습니다.

 

 

바이샤오옌은

 

썸네일

 

대만의 배우 겸 가수인 바이빙빙의 외동딸인 바이샤오옌이 태어났습니다.

 

아버지는 일본 만화 스토리 작가 카지와라 잇키였으나 카지와라의 폭력과 바람기를

 

견디다 못해 이혼한 바이빙빙은 바이샤오옌을 임신한 상태에서 대만으로 귀국했고

 

출산한 뒤 자신의 성을 붙여 키워왔습니다. 바이빙빙은 딸을 유명인의 2세로 키우기

 

보단 그냥 일반인처럼 키웠습니다.

 

 

바이샤오옌 유괴 사건 

 

1997년 4월 14일 대만 신베이시에서 일어난 사건으로 대만 범죄사상 최악의 사건으로

 

오늘날까지 거론되는 사건 입니다. 피해자의 연령, 사건이 전개되는 상황, 잔혹한 살해

 

수법 때문에 독보적으로 유명한 사건입니다.

 

1997년 4월 14일 바이샤오옌은 등교 도중 길가에서 범인들에 의해 유괴되었다. 범인들은

 

바이샤오옌을 납치하자마자 폭행 후 윤간하고 그녀의 새끼손가락을 절단했다. 이들은

 

바이샤오옌의 반나체 사진과 절단한 새끼손가락, 그리고 그녀가 직접 쓴 메시지를 보내

 

500만 신 대만 달러(한화 약 2억 원) 가량을 몸값으로 요구하며 협박했다. 4월 17일

 

범인들은 바이빙빙에게 다시 전화를 걸어 돈이 준비되었는지 물었고 범인들은 몸값을

 

받기로 약속하고 전화를 끊는다. 이후 바이빙빙은 어찌어찌 해서 500만 달러를 마련해

 

 

범인들에게 건네주고 딸을 되찾으려 했지만 경찰 측의 누군가가 언론에 바이빙빙의 딸이

 

납치되었다는 정보를 흘리는 바람에 몸값을 건네주기로 한 장소에 기자들이 먼저 진을

 

치고 있는 사태가 발생했고 범인들은 결국 몸값을 받는 걸 포기했다.

 

범인들은 몸값을 받는 데 실패하자 분노하였고 아지트로 돌아와서 바이샤오옌을 윤간하고

 

집단 폭행한 끝에 잔혹하게 살해했다. 이들은 시신의 손발을 묶어서 타이페이의 하수도에

 

유기했다. 바이샤오옌이 사망한 후에도 범인들은 바이샤오옌이 살아있다고 주장하고

 

바이빙빙에게 전화로 몸값을 요구했고 그러던 와중 같은 날 4월 25일 경찰이 범인들의

 

아지트를 급습해 범인들 중 4명을 체포했고 나머지 3명은 도주했다. 바이샤오옌이 사망한지

 

약 일주일이 지난 4월 28일 시신이 발견되었고 법의관의 부검 결과 직접적인 사인은 질식사

 

였으나 심한 폭행으로 간장이 파열되고 복강은 과다출혈로 부풀어 오른 데다 늑골도 대부분

 

부러져 있었다고 한다. 얼마나 머리카락을 쥐어뜯었는지 머리카락이 별로 남아있지 않았고

 

두 눈은 도려낸 데다 목이 졸려 죽는 과정에서 밖으로 튀어나온 것으로 보이는 혀도 잘려

 

있었다고 한다. 귀에는 폭죽을 집어넣어 그 폭발 때문인 듯 고막이 파열되어 있었고 몸 안에는

 

두 개의 쇠파이프가 박혀 있었으며 못도 무려 48개나 나왔다고 한다. 일부 대만 언론이 시신

 

발견시의 사진을 그대로 찍어 보도했고 이 사진은 일본에까지 넘어가서 일본 언론들에도

 

보도 되었다고 한다.

 

경찰은 주범격인 린춘성, 가오톈밍, 천진싱을 공개수배한다.

 

린춘성은 6발의 총탄을 맞고 견디지 못해 자살했고 가오톈밍도 자살했다. 마지막 남은 범인

 

재판에 넘겨진 천진싱은 징역 59년 6월형을 선고받았고 총살형으로 사형이 집행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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